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회장 겸 이사회 의장과 어피너티 컨소시엄간 '10년 전쟁'이 신 회장의 패배로 막을 내릴 전망이다. ICC(국재중재위원회)는 어피니티가 행사한 풋옵션 가격을 신 회장이 30일 내 외부 자문기관 등을 통해 재산정해야 하며, 이를 어길 시 하루 20만 달러(약 2억9000만 원)의 강제금을 부과하겠다고 판정했다. 신 회장은 오는 2025년 1월 중순까지 어피니티가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24%)의 가격을 어피니티 측에 제시하고, 어피니티에게 값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양측 다툼의 시발점은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당시 교보생명의 2대 주주인 대우인터내셔널은 해외사업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보유 교보생명 지분 전량(24.01%)을 시장에 내놨다. 그때 교보생명 최대주주인 신 회장의 지분율은 현재와 동일한 33.78%에 불과했다. 비우호적 세력이 대우인터내셔날보유 지분을 인수하고, 사모펀드인 코세어(9.79%),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9.93%), 수출입은행(5.85%) 등 주요 주주 중 일부와 연합을 맺는다면 충분히 신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이때 신 회장에게 혜성처럼 등장한 우군이 바로 재무적 투자자인 어피니티 컨소시엄이다.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1조2000억 원(주당 24만5000원)을 투입해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을 모두 인수하고, 신 회장과 풋옵션 계약을 맺었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우호 세력으로써 신 회장을 뒷받침해주되, 2015년까지 교보생명을 상장시키지 못하면 신 의장이 어피너티 컨소시엄의 교보생명 지분을 되사줘야 한다는 게 해당 계약의 주된 내용이었다.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방어하길 원하는 신 회장, IPO(기업공개)를 실현해 최대한 많은 차익을 얻고자 하는 어피너티 컨소시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신 회장은 어피너티 컨소시엄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교보생명의 증시 입성은 결과적으로 무산됐고, 이에 따라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계약대로 풋옵션 군한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신 회장에게 전달했다. 어피너티 컨소시엄이 책정한 풋옵션 가격은 교보생명 지분 인수 당시보다 1.7배 가량 비싼 주당 40만9912원이었다.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ICC는 2021년 1차 중재 당시 어피니티가 제시한 풋옵션 가격대로 지분을 되살 의무는 없으나 어피너티 컨소시엄의 풋옵션 행사 권한은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이번 2차 중재에선 앞서 거론한대로 보다 더 어피너티에게 유리한 판시가 나왔다. 어쨌든 신 회장은 어피너티 컨소시엄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을 무조건 되살 수밖에 없게 됐다.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주도하는 상법 개정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절감케 된다. 해당 상법 개정안은 현행법에 명시된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게 골자다. 전체 주주의 이익 제고보다 소수 오너일가의 경영권 방어에만 몰두하는 기업들의 행태를 다스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진정한 밸류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재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재계가 어떤 이유를 제시하더라도 왜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게 대다수 투자자들의 생각이다. 기업은 주주를 위해 경영활동을 펼쳐야 하고, 이사는 주주들에게 충실해야 하는 건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자신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기업공개라는 조건을 제시해 어피너티 컨소시엄이라는 우호 주주를 2대 주주로 확보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고, 2대 주주에게 충실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교보생명은 어피너티 컨소시엄이 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사과 공모해 교보생명에 대한 풋옵션 가격을 과도하게 높게 책정했다며 이들을 고발하기도 했다. 신 회장이 어피너티 컨소시엄과 체결한 계약에 대해 교보생명이 법적으로 대응한 셈이다. 배임죄가 성립될 여지가 있어 보이는 대목이었다. 또한 교보생명은 뒤늦게 IPO를 추진하면서 한국거래소가 어피너티 컨소시엄과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 등을 이유로 상장 예비심사 미승인 결정을 내리자, 어피너티 컨소시엄에 상장 실패 책임을 떠넘기는 내용이 담긴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상법 개정이 수년 더 빨리 이뤄졌다면, 주주들이 합당한 권리 행사를 보다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구조가 일찍 구축됐다면, 아마도 신 회장과 교보생명은 이 같은 행보를 보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2대 주주인 어피너니 컨소시엄은 계획대로 엑시트를 하지 못해돈이 묶여 큰 손해를 입었고, 교보생명이라는 법인은 오너 리스크로 인해 유무형의 물적·인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비단 교보생명뿐만이 아니다.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굴지의 재벌 대기업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오너일가의 경영권을 방어해 왔고, 이 과정에서 많은 투자자와 소액 주주들이 피눈물을 흘렸다. 상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다만, 어느 정도 수준(평등한 출발·공정한 경쟁이라는 이상을 훼손시키지 않는 수준)의 상속세 완화 작업도 병행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신 회장과 어피너티 컨소시엄간 분쟁이 벌어진 근본 원인은 상속세에 있다. 신 회장은 2003년 부친인 故 신용호 창업주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약 40%를 상속받았고, 해당 지분 중 5.85%를 국세청에 상속세 명목으로 현물 납부했다. 당시 신 회장 등 오너일가가 낸 상속세는 전체 상속 재산의 60%에 육박하는 1830억 원 수준이었다. 이어 교보생명이 2007년께 유상증자에 나서면서 코세어 등 사모펀드가 대거 유입됐고, 신 회장의 지분은 33%대까지 떨어진 것이다. 신 회장이 어피너티 컨소시엄과 손을 잡으면서까지 경영권 방어에 목을 매게 된 배경이다. [뉴스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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