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사들은 공사를 직접 수행하지 않는다. 브랜드와 신인도를 앞세워 사업을 수주한 후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어 하도급을 준다. 공사는 하청업체가 맡고, 원청 건설사는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에서 매년 발표하는 시공능력평가는 엄밀히 말하면 건설사의 '시공능력'이 아니라 '관리능력'를 평가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시공능력평가 제도의 개선도 이 같은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하자보수 시정명령을 받거나 중대재해처벌법 유죄 판결을 받을 시 감점되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진 바 있다.
우리나라 시공능력평가 1·2위인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현대건설의 서울 용산구 한남4구역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한남4구역 재개발사업) 수주전이 시공사 선정을 한 달 가량 앞두고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양사 모두 업계 최고 수준의 시공품질, 특화설계 등을 제시해 조합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하지만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모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설업체인 데다, 앞서 거론했듯 공사는 그들의 협력사가 하는 것이다. 누가 시공권을 획득하든 시공품질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양사가 저마다 내세운 특화설계도 관할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를 거치면서 엇비슷해질 공산이 크다.
어느 수주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한남4구역 수주전에서도 건설사들은 자신들의 관리능력이 얼마나 우수한지에 대한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현장에서 불필요한 잡음이 발생하거나 공사가 지연되는 일이 없도록 어떻게 사업장을 운영할 것이며, 어떻게 하청업체를 선정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가 없다. 특히 조합원들 입장에선 준공 후 하자보수 등 사후관리 관련 공약이 없다는 게 향후 입주 시점에서 아쉬움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람이 짓는 건축물에는 하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최근에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인상, 전문 인력의 현장 이탈 등으로 인해 아파트 하자 이슈 발생 빈도가 과거보다 높아진 상태다. 하자보수 문제를 둘러싼 시행사(조합 등)·시공사와 입주민간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자보수 작업은 하청업체가 수행하지만, 입주민들로부터 하자 사항을 접수받고, 원활한 하자보수가 진행되게끔 용역업체를 관리하는 건 원청의 몫이다. 하자보수 등 건설사의 사후관리 역량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한남4구역 조합원들은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소재 래미안 A단지, 강남구 개포동 소재 디에이치 B단지의 하자보수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삼성물산이 시공을 맡은 A단지는 다음달 입주 개시를 앞두고 얼마 전 사전점검을 진행했다. 사검 결과 해당 단지 입주예정자들은 예상보다 많은 하자 사항을 접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대 내부 바닥재 누수 흔적, 지하주차장 입출구 진입로 아스팔트 시공 부실 등 심각한 하자들도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특정 동은 하자가 집중돼 입주예정자들의 불만이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주방 동선, 우물천장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같은 부분에 대해 입주 전까지 삼성물산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눈여겨볼 만하다. 삼성물산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한 2000여 세대 규모 래미안 단지(2019년 입주)에서 입주민들이 부실시공, 하자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자 해당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하자분쟁을 조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접수한 바 있다. 건설사가 입주민을 겨냥해 하자분쟁 조정을 신청한건 당시 이례적인 일로 평가됐다.
현대건설이 타 건설사와 함께 시공을 맡은 B단지는 지난해 말 입주 당시 저가 바닥재 사용 의혹 등 대규모 하자 논란이 불거졌던 현장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하자보수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입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골프장, 수영장 등 커뮤니티 시설에서 비가 종종 새고, 곰팡이가 자주 발생하는 현상에 대한 분노가 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현대건설의 책임은 없는지 살펴볼 만하다.
수주 후에 공사비가 오르지 않은 정비사업 현장을 최근에 본 적이 없다. 누가 시공권을 따더라도 공사비는 증액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 조건은 건설사가 독단적으로 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금융권의 유동성과 건전성, 금융당국의 정책,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 여부, 건설사가 소속된 대기업집단의 상황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시공 역량은 비등해 보인다. 한남4구역 조합은 하자보수 등 사후관리에 대한 공약도 양사에 요구해 비교해 봄이 바람직할 것이다. [뉴스드림]